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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어에서 시니어로/개발일기

[월간회고 / 2023년 1월] 내가 해냄(Done)

by 펜네임 2023. 2. 6.

미루기에서 자유로운 일상

작년 말은 '게으른 완벽주의자를 위한 심리학'이라는 책을 바이블 삼아 미루지 않는 일상을 목표로 했고 매일 9시에 일어나 12시 전에 잠들기를 루틴화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선 룸메이트의 도움도 컸는데, 루틴을 위해 11시엔 소등을 한다거나 일어나서 다시 잠들지 않는다는 점, 매일 3번이나 챙겨야 하는 약을 꼬박꼬박 잘 챙기는 점을 닮고 싶다) 매일 주중 오전엔 헬스장에 가서 2시간 운동하고 씻고 카페에 가서 저녁 6시까지 공부하는 하루도 제법 일상이 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 더 하기 싫고 조금 더 어려워지고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해야 하는 일을 덜 미루도록 나를 달래는 방법들도 몇가지 터득했다. 이젠 예전만큼 자주 게임으로 도피하지 않고, 하더라도 덜 집착하게 된다.

 

 

 

Done is better than perfect

를 계속 되새기며 살고 있다. 얼마 전 스터디메이트인 R님의 글에서 알게 된 건데 R님은 저 문구의 'Done'을 60% 정도로 생각하고 계시더라. 그걸 보고 깨달은 건 내가 저 글을 '완벽한 것보다 해내는 게 낫다' 로 읽고 있었다는 거고, 나의 '해내다'의 기준이 내가 일반적으로 달성하는 수준보다 높은 편이라는 거였다. 그 기준은 80% 정도. 그래서 수정하기로 했다. '완벽한 것보다 끝까지 해내는 게 낫다'. 근데 이제 과정이 엉망진창이어도 된다. 마라톤을 하기로 했다면 중간에 앉아서 쉬어도 되고 누워도 되고 추진력을 얻기 위해 백스텝을 밟아도 된다. 마라톤 대신 경보 대회 나간 듯이 걷기만 해도 된다. 끝까지만 가면 된다. 그렇게 해도 해낸 걸로 나 스스로를 인정하는 게 나에겐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을 기하는 것만큼 어렵게 느껴지는 일이기도 하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 자신이 도덕적으로 옳은 선택을 하며 산다고 믿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적어도 나만은 항상 말의 내용에 진실과 진심을 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산 날이 길었다. 그러면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아니까 괜찮다고. 꾸밈어를 넣는 건 어색했다. 실제보다 좋게 들리게끔 하는 건 영 불편했다. 발화하는 내가 담은 마음과 사실이라는 내용물이 중요했고, 상대에게 전달되는 과정에 이 신호들 중 어떤 것도 좋아지거나 나빠지거나 함의가 커지거나 작아지지 않길 바라서 (쉽게 말하면, 상대가 조금도 오해하지 않길 바라서) 신중하게 단어를 골랐다. 그렇게 조사 하나하나 있는 그대로의 의미를 담아서 전했는데 상대가 조금이라도 달리 들었거나 행간을 듬성듬성 건너뛰어버린 게 느껴지면 성질이 났다.

 

스스로를 과소평가하진 않았지만 건강하고 유쾌한 삶을 영위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 믿게 되는 데는 한참이 걸렸다.

인간은 모두 우주의 먼지고, 나 역시 그러하고, 세상에 중요한 사람이란 없듯 중요하지 않은 사람도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 머릿속 우주를 떠다니는 동안 실제의 몸은 많은 시간을 바닥에 눌러붙어 있었다. 그 몸을 일으켜 보살피는 게 쉬워진 건 머리가 가벼워지면서부터다. 뭐라도 된 사람처럼 어느 장소에든 발부터 밀어넣고 몸뚱이를 들이밀 때 지난날만큼 날선 얼굴이 따라 들어가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을 마주할 때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그리 의식하지 않아도, 그 날 만난 사람들의 밝은 말들로 좋은 짐작을 할 수 있다.

 

지금의 나는 예전보다 생각이 적고 유쾌하다. 득이 있고 실이 있다. 부당함이나 심적 불편함을 참아넘긴 후 이전만큼 속이 쓰지 않다. 좋게 말하면 회복 탄력성이다. 깊어지지 않을 관계에서라면 있는 그대로보다는 상황에 맞춘 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성향이 바뀐 뒤로 부끄러움과 자괴감으로 몸서리치는 날이 훨씬 줄었다. 그러다 어떤 일이 있었다. 내가 잘못을 하고도 사과할 기회를 놓쳤다. 며칠 곱씹어놓고도 내 탓이 있음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제 내 마음은 혼자서도 쉽게 다치던 때보다 강하니, 내가 한 일을 되돌아볼 때 조금만 더 떨어져서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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